ESSAY

첫 눈 온 11월 아침

쑤케 2023. 11. 18. 10:03

평상시와 같은 루틴으로 기상을 하고 정해 놓은 행동을 한다.

이제 뭔가를 정해 놓고 반복하는 것이 습관을 만들려는 것보다는 잊지 않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한다.

체중을 재고 빈속에 물을 마시고 정해 놓은 습관처럼 창 밖을 스윽 한 번 본다.

동공이 커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눈이 왔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창 가까이 얼굴을 붙여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정말 눈이 왔다.

산과 더 가까운 맞은편 앞 베란다로 간다.

눈이 왔네.

눈이 왔어.

11월에 눈이 오다니...

눈 보기 어려운 동네에 11월에 눈이 오다니 신기하고 놀라워 심박수가 빨라진 듯하다.

많은 양이 아닌 얕은 눈의 전형적인 쓸쓸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하얗게 번져 하얌을 뽐내고 있다.

반가움과 걱정이 섞인 감정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역시나 엄마도 눈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신다.

어릴 적 눈을 지겹도록 보고 자라서 이런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서 은근한 동지애 같은 것을 느낀다.

나의 기억 속에서 겨울은 언제나 엄청난 눈이 차지하고 있다.

꿈인지 상상인지 만화영화의 한 장면이 기억에 각인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학교도 가기 전의 기억이 있다.

겨울에 문을 열면 꼬맹이인 나의 키보다 더 많은 눈이 왔었고 그 눈 속으로 땅굴을 팠던 기억이 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런 종류의 몇 가지의 얘깃거리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인지하기 시작할 때부터 머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내 것이라고 느끼지만 슬프게도 난 나의 기억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오래된 기억은 더 그렇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눈에 대한 기억이 있다.

눈이 오면 친구들과 동네 형들 동생들이 마을 공터에 모인다.

모이라는 연락을 받은 것도 아닌데 하나 둘 밥을 먹고는 집에서 세숫대야나 바가지, 삽을 가지고 모인다.

삽으로 눈을 퍼서 세숫대야에 담고 팡팡 때려서 다져 세숫대야 모양의 벽돌을 만드는 것이다.

잘 뭉쳐지지 않는 눈이 왔을 때는 바가지 같은 걸 가지고 와서 물을 뿌리기도 한다.

같은 또래의 동생들이 이렇게 눈 벽돌을 만들면 형들은 그걸 쌓는다.

벽돌 사이사이에 눈을 뭉쳐 바르면서 틈이 없이 무너지지 않게 잘 쌓는다.

완성이 되면 백과사전 같은 책에서 보았던 북극의 에스키모들이 산다는 이글루 같은 눈 집이 완성이 된다.

입구도 있고 옹기종기 모여 앉을 공간도 있어서 들락날락하면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그러다 들어와서 쉬기도 하고 했었다.

해가 나도 잘 녹지도 않아 마음씨 나쁜 누군가가 몰래 부수지 않는다면 오랜 날을 거기에서 놀 수가 있었다.

뜻밖의 이른 첫눈과 어릴 적 생각에 잔잔한 일렁임이 마음을 울리는 11월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