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짧은 동거여, 굿 바이!
두 달 전쯤부터 동거를 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과 변화에도 생활 패턴은 바뀌지 않았는데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주위를 둘러보고 살피게 되고 보이면 안심이 되지만 눈에 띄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찾고 있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하지만 참을 만해서 그냥 두었다.
마음먹고 깨끗하게 정리를 하면 되는데 그러지를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두고 보고 있었는데 신경이 쓰여서 이제 관계를 정리하려고 한다.
나쁜 놈은 아니라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깔끔하지 못한 나의 잘못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하여 주변 정리도 깔끔하게 같이 하려고 한다.
‘그리마’라는 이름이 있는 ‘돈벌레’가 집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각종 해충들을 잡아먹는 익충이라는 정보가 있었고 옛 말에 죽이면 돈복이 나간다는 말도 생각이 나서 그냥 두었었다.
에너지가 많이 떨어진 요즘 뭔가를 잡고 죽이고 하는데 힘을 쓰고 싶지도 않은 이유도 있었다.
어떤 때는 찾아와 한 번씩 안부를 묻는 것 같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니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돈벌레가 움직이는 동선과 겹치지 않도록 피해 주고 혹시라도 놀랄까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모습이 흉측하여 가까이 가기도 어렵다.
이 놈은 움직일 때는 양 쪽의 많은 다리를 이용하여 엄청난 속도를 내지만 한 곳에 머무르면 꼼짝도 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킨다.
다리가 몇 개인지 세어 보려고 해도 너무 촘촘하게 붙어 있어 정확하게 세기가 어렵다.
대략 한쪽에 13~15개 정도의 다리가 있고 더듬이 같은 것도 있다.
뒷다리가 크고 꺾여 있어 더듬이와 구분이 잘 안 되어 앞뒤를 바로 알아보기도 어렵다.
갑자기 움직일 때 어느 방향으로 튈지를 확신하지 못해서 멀찍이 떨어져서 보곤 한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적응한 종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영화에 나오는 무지막지한 우주 괴물이 같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는 정말로 그럴 것 같다는 확신 같은 것이 들면서 의식을 반복적으로 일깨워 좋지 않은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었고 불편해졌다.
보이지 않을 때에도 어느 구석에 있는지 어디에서 갑자기 확 하고 지나갈지를 두리번두리번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은 화장실 변기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놈이 있었고 집에서 처음 보게 된 개미 한 마리도 눈에 띄었다.
놈은 늘 그렇듯이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움직이지를 않는다.
꽤 멀리 떨어져 있던 개미가 이리저리 다니며 놈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는 둘이 마주치겠다는 예상을 하고 계속 관찰을 했다.
개미가 1cm까지 가까이 다가와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개미도 근접한 곳을 왔다 갔다 한다.
얘들은 청각도 후각도 없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개미가 돈벌레의 다리를 건드리면 둘은 순식간에 뒤엉켰다.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엉켜서 두 바퀴 정도를 돌더니 떨어졌고 돈벌레는 변기 뒤쪽으로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개미는 돈벌레 다리 하나를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치명상을 입은 듯 움직임이 느려졌다.
전쟁 영화 속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겨우겨우 포복으로 기어가는 모습과 너무도 흡사한 움직임이다.
15cm 정도를 움직이더니 개미는 꼼짝을 하지 않는다.
집에서 직관하는 야생의 충격적인 장면에 가슴을 슬어 내리고는 시름시름 앓고 있는 개미를 한 동안 그대로 두었다.
기력을 회복했는지 개미가 다시 어디론가 가는 걸 보고 안심을 하였다.
아파트에 살지만 앞뒤로 바로 풀과 나무가 있는 1층 집이라 벌레들이 집에 많이 들어온다.
특히 거미가 많다.
점프를 하는 특이한 놈도 있고 거미줄을 치는 놈도 있지만 베란다에서 더 이상 안쪽으로 침범을 하지 않으면 그냥 둔다.
가끔 집 안에 들어온 놈들은 조심스럽게 쓰레받기에 올려 다시 돌려보낸다.
‘먹을 것도 없는데 뭐 하러 왔니?’
조금만 놀다가 나가기를 바라며 대부분 그냥 둔다.
돈벌레도 집 안에 뭔가 살아있는 것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그동안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주변을 살피는 것이 습관처럼 되는 것 같아 동거를 끝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물기도 한다는 정보도 알게 되어 이제는 헤어질 결심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결정을 했다.
따뜻하고 습한 곳을 좋아한다고 하니 집 안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면 동거도 괜찮다 여겼지만 이제는 불편함이 몸으로도 무의식으로도 느껴져 끝내야겠다.
한 여름의 짧은 동거여, 굿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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