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에 온 전화
일요일 아침 10시가 막 지난 즈음 전화가 왔다.
발신자 이름을 보고는 의아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지금쯤 한창 산행 중 일 텐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 로타리 산장이다. “라는 말로 통화는 시작되었다.
그렇다.
그는 지금 산행 중이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중산리를 출발하여 로타리 산장에서 전화를 한 것이다.
원래는 같이 동네 산을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산행 후에 밥이나 한 끼 하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전화를 끊고 걱정과 긴장감이 들었다.
지난주에 혼자서 뒷산을 오른 것도 몇 개월 만인데 누구와 같이 산에 간 적은 1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3~4시간의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에 배낭을 가져가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산에 가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배낭을 멜 수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내용의 대화를 그와 한 적이 있었다.
난 5월에 어깨 수술을 했고 아직 통증도 있고 완전한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고 산행시간도 참 어중간 하다.
산책 같은 짧은 시간이면 그냥 사뿐사뿐 다녀오면 될 것인데 4시간의 산행에는 물도 필요하고 여분의 겉옷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을 가져갔다가 통증이 오면 짐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동네 산이라도 600m의 높이에 우리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등산길로 갈 예정이라 결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산행 이틀 전인 금요일에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서 떨림이 전해진다.
산행을 다음에 하자는 내용의 말씀을 하신다.
4시간의 산행보다도 배낭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확정하지 못한 나로서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산악회 창립회원이자 초대 회장을 지낸 그는 지금은 고문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산악회에 참여를 하고 있다.
자부심이 대단해서 정기산행은 물론, 모임과 행사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산행이 없는 일요일이라 나에게 산행을 제안하였는데 산악회에 특별산행이 잡혔다고 한다.
버스까지 예약된 산행에 참여가 저조한 모양이었다.
운영진의 연락을 받고는 가겠노라고 약속을 한 것이다.
미안하다고 하는 그를 달래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하고 마지막 통화를 했는데 산행 중에 전화가 온 것이다.
한숨을 쉬고 말을 한다.
“여기 로타리 산장인데... 천왕봉 밑에 로타리 산장에 있는데...”
어쩐 일이냐고 묻는 나에게
“하아, 내려가려고...”
놀라서 “네”라는 짧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연신 한숨을 쉬신다.
“하아, 안 되겠네. 내려가야 할 것 같아.”
“내리막은 자신이 있는데 이제 오르막은 힘이 부쳐서 안 되겠네.”
“근육이완제를 먹고 했는데도 오늘은 안 되겠네”
“다른 회원들 다 올려 보내고 로타리에 있는데 내려가야 할 것 같아”
가슴이 찡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가지고 다니며 산행을 하고 있었다.
보통의 다른 사람과는 달리 하산길은 거침이 없는데 오름길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는 그의 산행을 포기한다는 전화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지역에 산악회라는 것을 처음 만든 사람으로 진짜 산에 미쳐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누구보다 열정도 있고 주위의 인정과 신임을 받으며 쉬지 않고 산행을 했던 그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50년 넘게 산행하면서 이런 적이 없는데... 산행 중에 포기를 한 적이 없는데.. 이제 안 되겠네.”
“하아...”
“올라갈 때는 도저히 안 되겠네. 다리 근육을 늘이는 운동을 하던지 해야지 오늘은 안 되겠다.”
괜찮다고 그냥 조심히 내려오라고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얘기를 했지만 전화기로 느껴지는 기운이 어떤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래, 내려가야지 요즘은 잘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며...”
“안 그러면 골로 간다고 하더라...”
“너무 걱정하지 마라. 칼바위로 천천히 내려가면 된다.”
칼바위로 가지 말고 편한 길로 내려와서 버스 타고 중산리까지 가라고 말을 했지만 그는 아직 내려가는 건 누구보다 더 자신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그리 하지 마시라고 해도 듣지를 않는다.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 말처럼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 거지... 이제는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도 할 수 있어야지... 나중에 보자.”
통화가 끝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산 길을 내려오는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으며 무슨 생각을 할지는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마음이고 기분인지는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건강에 문제가 있어 마음고생이 있는 내가 느끼는 감정도 같은 것이라서 더 마음이 쓰인다.
이제는 인정하고 내려놓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런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할 것 같고, 그래야 편안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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