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온 아침의 감성
여름 끝자락에 느껴 보는 익숙지 않은 선선함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도 잠에서 깨기 전부터 내리고 있는 비로 한 발 물러선 것 같은 8월 말의 아침이다.
오다 말다를 반복하는 이 비에도 시간의 흐름이 어김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새로 시작한 기상 루틴에 맞춰 움직였다.
더 좋은 걸 찾기 전에는 이대로 해보려고 한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땟거리가 없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최근에 새로 문을 연 짬뽕집이 떠올라 가 보기로 하였다.
오며 가며 봐왔던 집으로 테이블이 4개로 많지는 않지만 메뉴도 다양하고 집에서 가까운 식당이라 예의로라도 한 번 가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었었다.
우산을 받치고 걷는 동안 슬리퍼에 빗물이 튀어 종아리를 때린다.
슬리퍼 안으로도 빗물이 들어와 저벅저벅 소리가 난다.
내리막길에 벗겨질까 조심조심 집중하면서 걷고 있을 때 기억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중학교 시절 난 비오는 날을 무척 좋아했었던 것 같다.
학교를 가지 않는 일요일이나 여름방학 때의 기억이다.
비가 온 날이면 어김없이 우산을 들고 인근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갔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운동장을 걷고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모래와 마사토가 섞인 흙 사이로 삐져나온 잡초들...
운동장과 그물도 없는 축구골대..
벗겨지거나 덧칠을 한 철봉과 시소 같은 기구들...
오는 비를 눈을 부릅뜨고 맞고 있는 호랑이, 세종대왕 등의 동상들..
그런 비오는 날의 운동장이 좋았다.
맨발로 걷기도 하고 발장난의 치기도 한 그런 시간이 좋았다.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는 얕은 곳을 맨발로 걷을 때 발바닥에 느껴지는 그 느낌이 좋았다.
운동장 귀퉁이에 있는 씨름장의 모래 위에 물이 찰랑찰랑 차 있었고 어김없이 맨발로 들어가 뒤뚱뒤뚱거리며 걸었다.
초등학교에 새로 씨름부가 생겼고 그래서 씨름장에 모래가 많아졌다.
발바닥을 스치며 발가락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고운 모래로 느껴지는 간지러움이 너무 좋았다.
이런 추억을 그리워한 적이 살면서 꽤 자주 있었다.
그 감성을 오늘 아침 느끼게 되어 가슴이 진정이 되지를 않는다.
점심시간에 걸치지 않도록 11시 30분쯤에 도착을 하여 소고기짬뽕을 주문하였다.
젊은 사장님 혼자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고 배달 주문 몇 개를 보내고 음식을 내어주셨다.
모양새는 나름 괜찮아 보였지만 맛은 평가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짬뽕이 이렇게 맛없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질겨서 식감이 좋지 않은 소고기와 오징어를 한쪽으로 제쳐 두고 면만 좀 건져 먹고 나왔다.
여름비가 오고 있는 차분한 아침에 산책 삼아 나와 느껴보는 풍부해진 추억의 감성을 깨뜨린 것이 한 끼 먹거리라는 사실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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