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학창 시절 이야기
그와 장례식장을 간다.
20년 전에 같이 어울렸던 지인의 장모상에 문상을 가는 길이다.
그와는 정말 오래 같이 했고 지금도 계속 연락을 하고 얼굴도 가끔씩 보곤 한다.
평상시와는 달리 묻지도 않은 어릴 적 얘기를 시작한다.
그는 큰 도시의 가장자리 작은 마을에서 제법 살림살이가 괜찮은 집에서 태어났다.
태어나 촌놈이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했다며 선생님과 기차를 타고 5명 정도의 아이만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몇 차례 얘기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귀퉁이 작은 동네에서 도시의 가장 큰 중학교에 다녔다.
다른 학년에서도 도시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몇 명 되지 않아 자부심이 있었다 한다.
또래에 비해 덩치도 크고 힘도 좋았던 그는 선생님의 권유로 씨름을 하게 되었다.
대회에 나가면 곧잘 우승을 하였기에 고등학교 진학도 체육 특기생으로 지원을 하였다.
지역에서 자신보다 대회 성적이 좋은 학생이 없어서 추호도 의심이 없었는데 탈락을 했다.
기량이 떨어지는 학생 몇몇이 돈 봉투를 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한 그는 질통 한 짐에 어른은 10원 학생은 5원을 주는 막노동 일을 6개월 정도 했다.
당시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가세가 많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집안 장남으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진학의 뜻을 가족에게 전했고 집에서는 고입 학원을 등록하여 주었다.
부푼 마음과 진학을 하겠다는 의지로 도시의 학원을 갔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조직을 만들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었고 그에게도 시비를 걸었다.
힘이 장사인 그는 무리 중 하나를 집어던져 무리를 한 순간에 제압을 했다.
며칠이 지나 그는 골목길 안에서 10명의 불량배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쇠몽둥이와 각목, 벽돌을 들고 있는 그들에게 꼼짝없이 뭇매를 맞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제공격으로 날아온 벽돌에 기절하듯 쓰러져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같이 맞받아 싸웠다면 아마도 큰일이 일어났을 거라고 한다.
그 이후로는 학원에는 얼씬도 못하고 학원을 함께 다니는 친구의 도움으로 자료를 받아 도서관에서 독학으로 공부를 하였다.
시험을 치렀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낙방을 한 학원친구는 학원 건물에 자신의 이름이 크게 새겨진 현수막이 걸렸고 원장이 그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했다.
자신을 괴롭힌 무리들도 시험에 떨어졌고 멀리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에 몰래몰래 뒤로 입학을 했다고 한다.
그 무리들이 요즘 이슈가 많이 되고 있는 변호사, 검사 부모를 둔 갑질과 일진 학생들의 그것과 같다는 것이다.
몰매를 맞고도 어찌하지 못한 억울함이 있었는데 최근에 임명된 장관급 인사를 보고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어릴 적 얘기를 재미나게 해 준거다.
그러면서 현 정권의 잘못된 점에 열을 올리신다.
동창회 게시판에도 정권 비판 글을 올려 보수성향이 강한 칠순의 어르신들에게 많은 항의 연락을 받는다고 한다.
탄핵되어 동창회 사무국장에서 쫓겨나는 것 아니냐는 농을 하면서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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